미주서부장로교회 · 2026년 10월 11일 주일
죽음의 세상에서
생명으로 살기
흔들려도 괜찮습니다
믿음으로 밟고 지나갑니다
사도행전 20:7–12 · 2026.10.11 · 김진주 목사
한 눈에 보기
드로아의
주일 밤
바울의 긴 강론 중에 창에 걸터앉아 졸던 소년 유두고가 삼 층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바울은 달려 내려가 그를 끌어안고 외쳤습니다 — "생명이 그에게 있다."
- 바울도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믿음으로 밟고 지나갔습니다.
- 본문의 초점은 유두고의 사연이 아니라 이 일로 교회가 얻은 위로입니다. 그 위로를 받은 사람 중에 바울도 있었습니다.
- "생명이 그에게 있다"는 지친 바울 자신에게 주신 말씀이기도 했습니다 — "바울아, 생명이 너의 안에도 있단다."
- 생명으로 사는 길 둘 — ① 나를 와락 껴안으시는 주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 ② 교회의 예배와 교제
바울도
죽고 싶었다
세 차례 선교 여행을 마치고 믿음이 한창 무르익은 바울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잘못 믿어서가 아닙니다. 사람이 그런 것입니다.
고층 빌딩은 조금 흔들리도록 설계해야 튼튼하다고 합니다. 부족함을 느끼고, 갈급하고, 때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믿음이 더 견고합니다.
부활 신앙은 천사의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을 제대로 밟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요즘 나는 어디쯤 서 있나요?
고난과 낙심 앞에서의 지금 내 모습
교회가
얻은 것
12절의 '청년'은 '파이스', 소년이나 어린 노예를 뜻합니다. 종일 고된 일을 마치고 와서 졸음과 사투하던 열네 살 무렵의 아이였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 딱한 사정을 말하지 않습니다.
귀환 여정 가운데 가장 길고 자세한 이 기사가 보여 주는 것은 이 일로 교회가 얻은 위로입니다. 그리고 그 위로를 받은 사람 가운데 바울도 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생명의 위협, "그 길 끝에 고난이 있다"는 말씀. 바울은 무거운 마음으로 드로아의 밤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바울아,
생명이 너의
안에도 있단다"
죽은 아이를 부여잡고 기도하며 바울이 한 말 — "생명이 그에게 있다." 그것은 지치고 두려운 바울 자신을 위로하시는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밀레도 고별 설교의 '생명'과 10절의 '생명'은 같은 단어 '프쉬케', 존재 전체를 뜻합니다. 자신감에 겨워 쉽게 나온 말이 아닙니다.
이 죽음의 세상이 결코 빼앗을 수 없는 생명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생명으로 사십시오.
몸을 던져
와락
껴안으시는 주님
"그 위에 엎드려"의 '에피핍토'는 몸을 던졌다는 뜻입니다. 대드는 아들의 두 손을 붙잡고 엉엉 울며 기도하던 어머니처럼, 자식을 살리려고 온몸으로 하나님께 기대는 마음입니다.
누가는 탕자를 끌어안는 아버지에게 같은 단어를 씁니다. 유두고를 껴안던 바울은 같은 심정으로 자기를 껴안고 계신 예수님을 느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에 절절매는 나에게 주님이 달려와 몸을 던져 안으시며 말씀하십니다. "너에게 생명이 있다."
삶으로
함께 예배하다가
사람이 삽니다
본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배입니다. 떡을 떼는 것은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예배를 결코 멸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리 살라고 명령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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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결단
주님의 품에
꼭 안겨
유두고가 살아난 그 밤, 성도들은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올라가 떡을 떼고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했습니다.
- 흔들려도 괜찮습니다.
- 믿음으로 밟고 지나갑니다.
- 함께 예배하며 생명으로 삽니다.
“죽음의 세상에서 생명으로 산다는 것,
예배하며 사는 것입니다.”
미주서부장로교회 · 죽음의 세상에서 생명으로 살기 (행 20:7–12) · 2026.10.11 김진주 목사 · 성경: 개역개정